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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스토리

에베레스트 정상은 누가 처음 올랐을까?

지난 포스팅에서 히말라야 14좌가 무엇인지 얘기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히말라야 14좌 최초 등정자인 라인홀트 매스너가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이룸으로써 히말라야 14좌 등정 레이스는 일단 끝났습니다.

매스너에 못지 않은 영웅 예지 쿠쿠츠카는 14좌를 두번째로 완등하고 로체 남벽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1953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 1953년 히말라야 등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나 영국과 독일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영국과 독일은 에베레스트와 낭가 파르밧에서 초등을 놓고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8000미터급의 초등은 안나푸르나에서 프랑스 원정대가 성공햇습니다.

산소도 없이 말이죠.

 

에베레스트는 세계최고봉의 의미가 있어 8000미터급 봉우리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봉을 오르는 나라가 가장 힘센나라다"

뭐 그런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세계 최강국으로써의 자부심을 가진 영국은 무조건 초등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해야만 했습니다.

1911년 남극점 원정에서 노르웨이의 아문젠에게 최초의 남극점 도달이라는 타이틀을 내어준 영국의 뭉게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1921년대 부터 1924년까지 줄기차가 에베레스트로 원정대를 파견했지만 영국은 계속되는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1924년에는 맬러리와 어빙의 전설을 남기며 계속 되는 실패를 겪어야 했죠. 북서릉의 세컨 스탭이후로 실종된 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는지는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아있었고 무수한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1999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대에 의해 발견된 맬러리의 시신과 유품에서도 어떤 증거를 발견해 낼 수가 없었죠.

 

1953년의 영국원정대는 기존 영국 원정대가 오르던 티벳 루트를 포기 했습니다. 탐사까지 총 세번에 걸쳐 북서릉(티벳루트)를 공략했던

영국 원정대는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참가한 1953년 원정대에서 기존루트를 버리고 남동릉(네팔 루트)를 선택합니다.

이유는 바록 직전해였던 스위스 원정대의 남동릉 루트등반에서 등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원정대에 참가해 8600미터 인근의 남봉까지 가본 경험이 있는 텐징 노르가이라는 강력한 셰르파도 있었습니다.

당시 참가한 텐징과 셰르파들의 경험과 정보력은 이 원정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으로 정상에 등정합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정상사진...누구나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겁니다.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 처음 올라선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한 사진입니다. 세계 산악사에서 가장 위해한 역사로 장식되는 순간입니다.

힐러리경으로 알려졌던 텐징노르게이의 정상사히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 일까요.. 에드먼드 힐러리일까요.... 텐징 노르게이 일까요..

네...그렇습니다. 사진속의 주인공은 바로 텐징 노르게이 입니다.

키로 보나 옷으로 보나 텐징 노르게이 입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은 힐러리 경일까요..텐징 노르게이 일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에베레스트 세계 최초 등정자를 에드먼드 힐러리 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1953년 당시의 원정대가 세계 최강국인 영국원정대였기 때문에 집중적인 조명과 관심은 힐러리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텐징노르게이가 홀대되진 않았습니다. 힐러리경 만큼은 아니었지만 모든 영광의 순간에 힐러리경 옆에는 항상 텐징 노르게이가 있었죠.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느냐는 질문에 텐징 노르게이는 생전에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5년 그의 자서전에서는 분명 힐러리경이정상에 먼저 올랐음을 언급했지만 힐러리 경은 " 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했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 것은 나와 텐징의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에베레스트의 초등정은 힐러리경 한명이 아닌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라고 하는 것이 공식적인 기록입니다.

 

2008년 세상을 떠난 힐러리경은

"텐징이 나를 위해 정상 바로 밑에서 30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정상에 선 다음 그가 정상에 섯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모든 셰르파는 정상 등정시 동행하는 등반가 보다 먼저 정상에 서는 경우가 없습니다.

"자신이 가이드 하는 등반가 보다 정상에 먼저 서지 않는 것"

바로 "셰르파의 법칙"은 이때부터 만들어 진것이죠.

 

정상사진의 주인공이 힐러리경이 아닌 텐징인 것은...

산소가 거이 소모되어가는 상황에서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해야 하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작동하는데 익숙했던 힐러리경이 텐징을 정상에 서게하고 촬영했다는 견해와 정상에 오를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텐징에 대한 힐러리의 배려라는 견해가 있지만 어느 견해나

타당하고 둘 모두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순간 만큼이나 두사람의 신뢰와 우정 또한 역사적이라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등반에서 부터 일생동안 그들은 진정한 친구였고 동료, 즉 인생의 자일 파티였습니다.

이 부분은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 등정에서 벌어졌던 발마와 파갈의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와는 다르죠.

 

히말라야 초등정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의 우정 만으로도 존경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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